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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동의 참여로 함께 만든 독립, 그 길을 걸어본다_아동위원 박준영
  • 작성자 아동참여지원부
  • 작성일 2024.02.28

[3·1절 기념 아동 기고]

아동권리보장원 박준영 아동위원이 3·1절을 기념하여 아동·청소년 독립운동가와 관련 활동을 돌아보며 작성한 글입니다.



아동의 참여로 함께 만든 독립, 그 길을 걸어본다



3.1절이 가까워 형과 함께 대전역 주변의 ‘3.16 만세운동광장’으로 출발했다. 벌써 봄이 한창이다. 파란 물감으로 그린 것 같은 하늘에서 봄의 기운이 물씬 풍겨온다. 집을 나온 지 얼마 안돼 ‘3·16 인동장터 만세 운동 기념비’가 눈에 들어온다. 광장에 내리는 햇살에서 들리지 않는 만세 소리가 마음에 퍼진다. 햇빛과 봄꽃이 가득한 날,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모습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3·1운동 이틀 뒤인 3월 3일, 대전 인동장터에서도 일본의 부당한 괴롭힘에나무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3월 16일 같은 장터 가마니상점의 높은 가마니 더미 위에서 한 청년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수백명의 청년들과 상인들이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원동과 인동을 돌며 만세 운동을 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 주둔하던 일본군이 도착하여 총을 쏘아댔고, 15명이 죽고, 수십 명이 다치고 체포되었다고 한다. 우리집 가까운 곳에서 100년 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니 마음이 무겁고 슬픈 기분이 들었다.


이 당시에 우리나라에서는 3.1운동에 약 200만명이 참여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는데, 7509명이 죽고 수만 명이 다치거나 체포되었다고 한다.(『한국독립운동지혈사』, 박은식, 1920.)


3·1운동에는 아동들도 독립운동에 당당하게 참여하였다. 유관순 열사*(당시 16세)와 그의 사촌언니인 유예도님(당시23세)은 아우내(천안) 독립만세운동을 이끌었다. 한이순님(당시 12세)은 양대리 장터(천안) 시위에 앞장섰고, 임갑득님(당시 14세)은 인천만세운동을 이끌었다. 3·1운동에서 아동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운동에 참여하였고 더 나아가 운동을 이끌기도 하였다.

* 열사: 나라를 위하여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하여 싸운 사람(표준국어대사전)


3·1운동에서 아동은 부당하고 억울한 일에 맞서 스스로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1920년에 나온 『개벽』이라는 책에서는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소년의 역할에 큰 기대를 가지고 소년을 존경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된다고 하였다. 또, 소년을 바르게 키우는 것이 새로운 국가로 다시 일어서는 방안이라고 하였다. 3·1운동을 계기로 아동에 민족정신을 일깨워주고자 경남 진주를 시작으로 각 지역에 소년회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때 방정환, 김기전, 이정호 등 선생님께서 함께 천도교 소년회를 만들며 소년운동을 하였다고 한다. 이후 1922년 4월, 천도교 소년회에서는 5월 1일로 어린이날을 처음 선포*하여 지금의 우리가 아는 어린이날이 만들어졌고 한다.

* 선포: 세상에 널리 알림(표준국어대사전)


1920년대에는 소년운동이 온 나라에서 일어나 소년단체가 500개가 될 정도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소년회’나 ‘소년척후단’ 등의 단체활동이 곧바로 독립운동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이 소년운동을 통해 길러진 민족의 정신과 함께 소년층이 학생층으로 성장하여 독립운동을 이끄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 소년운동은 1926년 6·10만세운동과 1929년 광주학생운동으로 이어지며 아동들이 뿌린 씨앗이 싹이 되었고 또 열매를 준비하면서 독립운동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하지만, 일제는 아동의 조선민족으로의 성장을 방해하고 일본 국민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일제는 아동의 참여와 교육 장려를 목적으로 유지되어 온 어린이날을 방해하고 소년운동을 탄압하면서 여러 소년단체들을 해산시켰다. 또한, 전쟁을 위한 아동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아동의 육체적 성장과 미래군인으로 건강을 강조하였으며, 1937년에는 결국 어린이날을 폐지하기도 하였다. 아동의 성장이 한국독립운동으로 이어지고, 우리나라의 힘이 될 것을 알고 아동의 교육과 참여를 막아버린 것이다.


100여 년 전, 3·1운동과 이후의 독립운동에서 아동의 참여와 희생으로 심은 독립의 씨앗이 독립국가를 향한 시작임을 알리게 되었다. 3.1운동이 시작되며 모든 국민들은 반드시 독립은 성공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독립운동에 큰 힘을 주었고 일제의 방해에도 꾸준히 활동하였다. 아동들을 위해 모든 국민과 민간단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아동들이 성장할 수 있었고, 아동들이 자라 우수한 청년들이 되면서 우리나라의 독립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아동들과 선조들을 다시 기억해 본다. 어려운 시기에도 아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교육을 위해 전 국민이 힘썼다는 것과 아동이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명 깊고 감사해진다. 아동의 참여와 성장이 나라의 큰 힘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겠다. 또 앞으로도 함께 할 아동들을 위해 우리의 권리를 높이고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과거와 같이, 현재 우리나라 아동들의 성장이 곧 미래 우리나라 성장의 씨앗이자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3.16 만세운동광장을 지나던 길을 바라본다. 옆에 부는 바람도 만세운동하는 수 많은 사람들인 것 같아 반가워진다. 105년 전의 일인데도 태극기를 들며 힘차게 걸었을 독립운동가들의 발걸음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기분이다. 모르고 걸었던 이 길이 따듯한 햇살과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다가온다.



2024. 2. 28.

박준영(아동권리보장원 아동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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